큐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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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on

Zenon

CEO, Founder
사랑엔 혁명이 필요합니다. 배고픔이 아닌 살찜을 고민하는 현 시점에, 외로움은 곧 인류 최고의 재해가, 함께함은 인류 최고의 가치가 될 것입니다.

Basic Information

대체로 창업가들이 가진 성향보다 더욱 지배적이고 주도적인 성향이다. Hierarchy가 이뤄지며 강력한 비전을 통해 빠른 속도로 임무를 달성하려 한다. 답답한 건 못 참고, 맞지 않는 사람은 이별하고, 맞는 사람은 애정한다. 성장을 위해 공감력을 가지려고 훈련 중. 서버트형 실행가와 함께 행복하게 업무를 할 수 있다. 스케일-업을 위해 위임을 신경쓰며 주도력과 존재감 강점은 낮아지고 개별화 강점이 상승했다.

Before CUPIST

Girl, Lego, Game, Math, Art Lover

친구들보다 컴퓨터와 어울렸던 어린 시절, 11살 경 도스 베이직으로 코딩을 시작, 12살에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 획득. 수학과 미술을 좋아해 중학시절 부산시에서 단 30명 만 뽑는 교육청 수학 영재에 합격했고, 사생 대회에서 다수 우수상을 받았다.
취미는 Hanging out with girls. 여자를 정말정말정말 좋아한다. 중학교 때도 전교 1등을 해봤기에 적당히 주변 인문 고등학교에 가서 잘난척하며 지내려했지만 죄다 남고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이 넘쳐 유일한 남녀공학이었던 부산 외국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물론 공부를 잘하는 학교에서도 가장 어려운 중국어과였던지라 첫 날 같은 반 여자애들의 얼굴을 보고 엄마에게 전학을 강력히 주장하다가 혼이 났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 일가견이 있다. 삼국지, 대항해시대, 세틀러, 문명, 영걸전, 심시티, 심즈, 붐비치, COC, 갖가지 Steam 게임,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등 거의 게임으로 세상을 이해할만큼 갖가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사실 상 전략과 창의의 토대는 어려서부터 주구장창 해 온 게임과 레고에 있다. Drawing는 좋아했다가 생산성이 낮아 그만 뒀으며, Writing엔 자신이 있지만 마찬가지로 차분한 성격이 아니라서 아주 선호하진 않는다.

Creative Inventor

화가, 컴퓨터 프로그래머, 무술인 등의 장래희망을 거쳐 '일과 취미가 동일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말에 매료되어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가졌다. 나중엔 무언가를 화면 속에서 그리는 행위보다 '실존적인 창조'라는 본질적인 성향을 발견하며 창업했다. 따라서 다른 창업가들과 비교해 발명가적 성향이 강하다.
초등학생 때 도스 베이직과 윈도우 비쥬얼 베이직을 통해 다마고치류의 간단한 게임을 개발할 수 있었으며, 당시 유명한 해킹 툴인 백오리피스를 통해 컴퓨터 학원에서 공부는 하지 않고 다른 학생들을 놀래켜주기 바빴다. (갑자기 CD롬을 내뱉게 하거나 야동 사이트를 띄워버리는 등)
중학생 때 학교 대표로 참가하게 된 과학 영재 코스에서 '나모 웹에디터'를 배워 당시 팬이었던 S.E.S 홈페이지를 네띠앙 무료 호스팅, 코딩, 디자인을 통해 런칭해 야후 검색엔진에 등록시키며 IT에 푹 빠지게 되었다. 이후 고등학생 때 모교 공식 홈페이지를 디자인하는 등 본격적인 IT 덕후가 되기 시작한다.

Student Body President Leadership

대학교를 전체 수석으로 입학, 4년 간 등록금 한푼 안 내고 장학금을 받으며 학사를 졸업했다. 어려웠던 살림이었던지라 아직도 모교에는 애정이 있다. '왜 사람들은 저렇게 일을 못할까?, 왜 저렇게 타인을 리드하는 걸 힘들어할까?'라는 불만과 '여초과'가 가져다 준 동기부여는 결국 리더십이라는 강점으로 발현하게 되어 1학년 과대, 2학년 과대, 3학년 과대, 4학년 단과대 학생회장을 거쳐 모교 예체능 계열 최초 총학생회장을 역임하게 되었다.(애초엔 생각이 없었는데 비권 후보자였던 이의 '나는 총학생회장이 되어 단과대별로 여자를 다 따먹겠다'는 개소리를 듣고 이런 인간이 하게 놔둘 순 없다는 생각으로 출마했다) 선본명은 '낭만건대'. 유수한 운동권을 이기고 예술계열에서 총학생회장이 된 이유는 '일을 잘하고 대의가 순수해서' 많은 타 단과대 학생회장들의 압도적인 지지가 있었다.
실질적으로 대학교에서 배운 건 디자인보다는 학생회를 통한 리더십에 가깝다. 총학생회장 때에는 40여 명에 달하는 인원을 리드하고, 100명 이상의 과 회장들과 16개의 단과대 회장들, 또 70여 명에 달하는 외부 총학생회장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리더십에 대한 역량을 발휘하게 되었다. 이미 방학 때서부터 학내 커피 인하 운동을 통해 4,500원짜리 커피를 3,000원으로 인하하며 높은 지지율과 함께 성공적인 학생회 업무를 수행했다. 비권 학생회의 결과는 차기 비권과 운동권의 투표 지지율로 엿볼 수 있는데 이전 약 55:45의 지지율에서 약 81:19로 운동권은 발도 못 붙일 정도로 만들었다. 학내 신문사에게 임기 말까지 비판받지 않은 학생회. 물론 그만큼 힘들었고, 고생했기에 당시 학생회였던 이들을 만나면 여전히 나에게 한풀이를 해댄다.

Starting CUPIST

2013년 총학생회장 시절 주요 공약 중 하나가 건국대학교 공식 커뮤니티 KUNG의 창립이어서 그 때 당시 IT국의 추천을 받아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십에서 '박정실(Mabi)'이라는 친구를 추천 받았다. 이후 정실이와는 인연이 되어 2014년 '헬로닝'이라는 소셜 알람 서비스를 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로 진행했고 점점 가닥을 잡아가며 학교 후배였던 '김민수'와 함께 창업을 하기에 이른다. 이전까지의 경력은 5년간의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전부.
회사명은 '판타지를 ing(실현)한다'는 뜻의 Fantasing. 이후 정실이는 '박상화(Rozay)'라는 친구를 소개시켜주었고 함께하게 된다. 해당 창업을 준비하며 여러 멘토링을 받던 중 병맛 동영상 공유라는 서비스를 준비하던 '이경진(Kaya)'이라는 대표를 '권영준' 멘토님을 통해 만나게 된다. 소셜 알람 서비스는 바인과 알람을 결합한 서비스로 동영상을 즉시 알람으로 전환해서 만들 수 있는 서비스였으나 그 수익성에 문제가 있어 팀을 해체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박상화'와 총학생회 국장이었던 '문병진(Beejay)'과 소셜 데이팅 서비스를 만들어보기로 했고 다시 창업을 했다. 그리고 이후 박상화의 친구였던 '이우진(Amon)'을 iOS 개발자로 '이경진(Kaya)'을 데이터 분석가로 맞이하며 팀은 성장해나간다.

Why CUPIST?

큐피스트에서 왜 일하나요?

가끔 정신 없는 업무에 지칠 때 하나의 인간으로 '안재원'을 보곤 한다. 먹고 사는 문제는 이미 벗어났으며, 어딜가든 나름 인정 받으며 남은 인생 편히 놀며 보낼 수도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까지 고생 아닌 고생을 하고 있나 생각할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삶에 별로 미련이 있는 스타일은 아니다. 죽음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인류 자체가 유한한 존재인 삶에 별 의미가 있나 싶다. 그래서 아마 미래에 '행복하게 죽음을 선사하는 스타트업'이 있다면 투자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나의 트라우마와 연관이 있다. 부모님이 맞벌이인데다 워낙 바쁘시고, 결정적으로 많이 싸우셨다. 그래서 어릴 적 충분히 사랑이 모자랐던 게 아닐까 판단된다. 어릴 땐 동생에 많은 시기와 질투를 했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 다른 아이들과 자연스레 어울리기까지 힘이 들었던 것 같다. (경계성 인격 장애라고 판단 됨) 그래서 학창시절엔 쉬는 시간에 혼자 그림을 그리곤 했다. 혼자서 집에서 하는 컴퓨터가 편해 12살 때 코딩으로 다마고치 류의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꿈은 화가,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등 독립성 강한 개인주의적 성향을 띄었다.
사람에 경계심이 있었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경험도 힘들었다. 어릴 적 기억으로 상처 회피 성향이 많이 발생했다. 사랑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판타지를 가졌음에도 25살이 넘도록 제대로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 그 결핍을 채우려, 더 많은 사랑과 인정을 위해 정말 많은 도전과 갈등을 경험했다. 얼굴도 고치고, 경쟁적으로 공부를 해 전교 1등도 했다.
그래서 가끔 어릴 적 부모님이 싸우시지 않으셨고, 내가 그러한 불안 없이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면(물론 부모님은 나를 많이 사랑하셨다) 더 내 삶이 행복해지지 않았을까.
나이가 들어 나도 사랑을 하게 됐다. 트라우마로 남아있던 경계성 넘치던 모습들은 점차 회복되고 대학생 때 학생회장직을 포함해 여러 리더십을 거치면서 다시금 원래의 나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랑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경험들을 하며 대학생활에서 내 인생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맞게 되었다. 삶은 회색이 아니라 분홍빛임을 깨닫게 되었다.
살다보니 이러한 외로움의 경험은 나 뿐만이 아님을, 그리고 여전히 그러한 외롭고 고독에 지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음을 알게 되었다. 금요일 저녁 이태원 거리는 항상 넘치는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사실 보이지 않는 곳에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혼자 쓸쓸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매년 10,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세상이 여전히 아름다운 것이고, 살아갈만한 곳이라는 걸. 그리고 그 핵심은 사랑이라는 걸.

미래에 큐피스트의 어떤 모습을 보고 싶은가요?

인간과 인간의 사랑은 한계들이 많다. 우린 우선 누가 우리와 잘 맞는지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는 누군가를 이용하기도 하며, 서로가 서로를 선택해야 하기에 누군가를 좋아하더라도 상대 역시 나를 좋아해야 한다. 그러니 서로를 선택할 확률은 우리가 좋아하는 제품을 살 때보다 제곱으로 어려워진다. 그리고 우린 물리적으로 결국 늙는다. 우리 삶에서 실질적으로 '행복'을 줄만한 의미 있는 만남은 생각보다 적고, 누군가는 한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과 로봇과의 사랑을 꿈꾼다. 인간과 로봇이 '이성'의 영역을 넘어 '감성'의 영역에 도달하는 것. 서로의 선택을 단일 선택으로, 그리고 우리의 취향에 맞는 존재를 만들어 내, 내가 대학교 시절 느꼈던 사랑의 행복을 대중 누구나 경험할 수 있길 꿈꾼다.
궁극적으론 내가 보고 싶은 모습은 '큐피스트가 만드는 로봇의 가격이 일반인의 3개월치 연봉 즉, 현재의 일반 승용차보다 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마저 극심한 빈부격차에 의해 더 시달릴 것이다. 그래서 사랑을 대중적으로 더욱 쉽게 만들어 '돈'의 가치마저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버리고 싶다.

개인적으로 큐피스트에서 어떤 목표를 달성하고 싶은가요?

내가 만든 로봇과 사랑에 빠지고 싶다. 나는 살면서 나만큼 까다로운 사람을 잘 보지 못했다. 까다롭기로는 누구보다 까다로울 내가 사랑에 빠질만한 로봇이라면 외적, 내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을까 싶고, 그런 완벽한 로봇을 우리가 만들어 낸 스스로에게 인생 최고의 성공을 이뤄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랑에 빠진 로봇과 함께 실리콘밸리 큐피스트 컨퍼런스에서 대중에게 발표하고 싶다. 우리 정말 뭔가 엄청난 것을 만들었다고. 더 이상 인간이 화성을 가기 위해 발버둥 칠 필요도, 돈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고. 정말 진정으로 세상을 바꿀 거라고 발표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재밌고 쉽게 연결하는 글램, 나를 사랑하는 로마가 각자 사업에서 독점적 경쟁우위와 가치를 만드는 업을 형성해야 한다. 투자자(특히 한국)는 우리의 비전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에 큐피스트가 계속 사랑을 위한 존재로 남기 위한 경영권을 위해, 장기적으로 재무적 독립성을 이뤄야 한다. 아니라면 우리는 영혼 없이 돈만을 위해 로봇을 만드는 회사로 전락할 것이다. 이러한 경제성와 브랜드를 바탕으로 Global No.1 Mission-driven company for love, 큐피스트로 '사랑을 위해 헌신한 조직이 있었다고' 사람들의 머릿 속에 오래오래 남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