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숙맥이 만든 1위 만남 앱' 글램 개발한 안재원 큐피스트 대표
20, 30대 특징 중 하나가 연애 상대나 친구를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로 만나는 것이다. 사람보다 앱이 조건별 맞는 상대를 더 잘 찾아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만남(데이트) 앱을 꾸준히 찾는 이유다. 물론 결과의 만족도는 별개다.
여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만남 앱 '글램'이다. 2016년 서비스를 시작한 글램은 입소문을 타고 퍼져 가입자가 150만 명을 넘어서면서 국내 만남 앱의 대명사가 됐다.
글램을 만든 주인공 안재원(35) 큐피스트 대표는 자칭 '연애 숙맥'으로,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에 6차례 성형 수술을 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서울 테헤란로에 위치한 큐피스트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만남 앱 개발 배경과 전망을 들어 봤다.
안재원 큐피스트 대표가 서울 테헤란로 큐피스트 사무실에서 국내 1위 만남 앱 '글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의 등 뒤로 보이는 '사랑의 열망을 충족하라'는 문구는 회사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최주연 기자
낭만을 외친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
안 대표는 건국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예술대 학생회장을 거쳐 61년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2013년 예대 출신 총학생회장이 됐다. "원래 총학생회장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문제가 많은 인물이 후보로 나서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이 되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에 견제하기 위해 출마했죠."
그는 정치 투쟁이나 학생 복지, 취업 등을 강조한 과거 총학과 달랐다. 총학 시절 내세운 모토가 '낭만 건대'다. "학점과 취업에 매몰돼 건조하게 대학 시절을 보내는 학우들을 보고 낭만이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진짜 배움은 인간관계에서 나오는데 이것은 아니다 싶었죠."
그래서 그는 인간관계 회복에 중점을 뒀다. "벼룩시장과 운동회 등 사람들이 자주 만날 수 있는 행사를 많이 열었죠. 공대와 예대의 집단 만남 등 친구 만들기 행사도 했어요."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일을 잘 했지만 정작 그는 25세까지 연애 한번 해 보지 못했다. "부산에서 유일하게 남녀공학인 부산외고를 다녔는데도 여학생들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어요. 이유는 모르지만 이성에 대한 울렁증이 있었죠. 당연히 연애도 자신이 없었죠. 군대 다녀와서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연애를 했어요."
성형 수술을 여섯 번 한 것도 이런 경험이 반영됐다. "자기만족과 연애를 잘하고 싶어서 쌍꺼풀 등 여러 번 수술했어요. 성형도 미래를 위한 투자죠. 상대를 모르는 상태에서 인상이 중요하니까요."
"연애 숙맥이어서 다행이에요"
그런 그가 어떻게 만남 앱을 만들었을까. 그는 대학 졸업 후 바로 창업해 알람 앱을 개발했으나 수익 모델이 없어 잘 되지 않았다. 그대로 포기할 수 없어 2015년 두 번째 창업한 회사가 큐피스트다. "사람을 연결해 주는 일을 좋아해 사업으로 하고 싶었어요.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랐지만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어서 꼭 하고 싶었죠."
이듬해 그는 '차미'라는 만남 앱을 개발했고, 2017년 글램으로 이름을 바꿨다. "유명한 만화 '헬로 키티'에 나오는 고양이 이름과 같아 상표권 분쟁을 피하려고 앱 이름을 바꿨어요. 만남 앱을 패션 브랜드처럼 만들자는 생각을 새 이름에 담았죠."
대학 시절부터 사람들을 이어주며 관찰한 결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쉽게 사귀는 것을 발견했다. "연애를 잘했다면 연애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만남 앱을 만들지 못했을 겁니다. 연애 숙맥이어서 다행이었죠."
안재원 큐피스트 대표가 서울 테헤란로 사무실 한편에 놓여있는 '큐피드' 증서 앞에서 향후 계획을 밝히고 있다. 안 대표는 직원들에게 만남을 이어주는 큐피드라는 의미를 증서에 담아 전달한다. 최주연 기자
게임 요소 결합하며 성공
그는 만남 앱에 게임 요소를 결합했다. "당시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을 즐겼어요. 이 게임은 이용자를 다이아몬드, 골드, 실버 등급으로 분류해요. 여기서 힌트를 얻어 글램 이용자들끼리 이성에 등급을 부여하도록 했죠.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는 것이 자극적이어서 욕먹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게 성공 요인이었죠. 사람들 사이에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만남 앱으로 소문나며 인기를 끌었어요.”
여기에 소프트웨어가 이용자 특성을 파악해 상대를 추천해 주는 기술을 도입했다. "이용자의 자기소개를 분석해 매력도를 수치화하고 성별, 연령, 국가, 문화권 선호도를 바탕으로 상대와 이어질 가능성을 예측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어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의 추천이 만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죠."
덕분에 '월 100만 원만 벌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사업은 가입자 150만 명을 넘어섰고 월간 이용자(MAUU)가 25만 명에 이른다. 매출은 일부 유료 서비스에서 나온다. "기본적으로 누구나 무료로 이용해요. 다만 상대에게 호감 표시를 하거나 메시지를 전하는 등 특별한 행위를 하려면 건당 2,000~3,000원을 내야 하죠."
AI가 악성 이용자 차단
안 대표가 글램에서 강조하는 것은 남녀 성비다. 많은 만남 앱이 남성 회원들을 유인해 돈을 벌려고 여성 회원이 많은 것처럼 속여 문제가 됐다. 심지어 일부 앱은 운영업체 직원이 여성 행세를 하기도 했다. "글램의 남녀 성비는 4 대 1입니다. 일부 데이트 앱의 남녀 성비는 9 대 1이죠. 9 대 1이면 제대로 된 만남이 힘들어요."
그는 글램에 여성 회원이 많은 이유를 인공지능(AI)을 이용한 허위 정보 차단에서 찾았다. "AI가 악성 이용자의 특성을 파악해 자동 차단해요. 다른 사람의 사진이나 정보를 도용하면 AI가 가입 시점, 국가, 위치, 사용 기기, 과거 올렸던 내용 등 모든 정보를 분석해 가짜를 거르죠."
더불어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을 배제한 것도 특징이다. "성 소수자도 만날 수 있어요. 꼭 만남을 남녀에 국한하지 않으려고 해요."
같은 차원에서 안 대표는 '로마'라는 상표의 성인용품 사업에도 투자해 최대주주가 됐다. 20, 30대 특징 중 하나가 성인용품 사용에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성에 대한 편견이 없고 솔직 담백한 것이 요즘 젊은이들의 특징이죠. 이들을 위해 화장품처럼 예쁜 디자인의 성인용품을 기획해요."
이런 특징에 힘입어 글램과 로마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글램은 지난해 120억 원 매출을 올렸고 손익분기점에 도달했어요. 로마 역시 지난해 12억 원 매출과 영업이익을 냈죠. 이런 성장성 덕분에 지난해 위벤처스, 스트롱벤처스, ZVC 등에서 40억 원 투자를 받았어요."
안재원 큐피스트 대표가 주경민 제네럴 마케팅 매니저와 함께 새로 선보일 '엔프피'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엔프피는 MBTI 성향이 비슷한 사람을 추천하는 서비스다. 최주연 기자
MBTI로 친구 찾아주는 서비스 ‘엔프피’ 공개 예정
글램에 이어 새로운 서비스로 '엔프피'도 준비 중이다. 곧 공개 예정인 엔프피는 성격유형검사(MBTI) 등을 토대로 이용자 성향에 맞춰 친구를 추천하는 서비스다. "서로 성향을 알면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죠. 엔프피는 연애가 목적이 아니라 잘 맞는 친구를 찾아주는 것입니다. 이성뿐 아니라 동성 친구도 추천해 줘요."
새 서비스를 내놓는 이유는 하나의 서비스가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30대 이상도 이용하는 글램과 달리 엔프피는 20대를 위한 앱이죠. 앞으로 중년을 위한 앱 등 세대별 특징에 맞는 서비스를 계속 발표할 계획입니다."
엔프피는 만남을 놀이처럼 즐길 수 있는 앱이다. MBTI 성향을 검사해 특징이 드러나는 동물 캐릭터를 부여한다. 이를 통해 상대의 성향을 쉽게 파악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신중한 사람에게 도베르만, 활달한 사람에게 비글 등 동물 캐릭터를 부여해요. 이후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이 내부 자료를 분석해 성향에 맞는 상대를 추천하죠. MBTI 외에 자체 성향 파악 프로그램을 개발해 추가할 생각입니다."
20대의 연애 경쟁 상대는 넷플릭스
엔프피는 결혼과 연애에 집착하지 않는 20대를 겨냥했다.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태어난 Z세대에 사랑을 위한 경쟁 상대는 넷플릭스예요. 혼자 있어도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것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헌신적 연애와 결혼을 부담스럽게 생각해요."
오죽하면 Z세대는 게임도 직접 하는 것 못지않게 남이 하는 게임 시청도 즐긴다. 안 대표는 연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TV 연애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이유가 게임 시청과 같아요. 대리 만족이죠. 이런 Z세대를 진정성 있는 삶으로 끌어내고 싶어 엔프피를 개발했어요."
실제로 일부 20, 30대 여성들 사이에 진정성 있는 만남을 위한 모임들이 있다. 최근 큐피스트로 이직해 엔프피를 담당하는 여성인 주경민(33) 제네럴 마케팅 매니저도 이런 모임에서 활동한다. "성향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여성들이 낯선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려고 비공개 모임들을 해요. 기존 회원의 소개로 가입하는데 주로 전문직 여성들이 많아요. MBTI 성향이 비슷한 사람을 찾아주는 엔프피는 이런 경향을 반영했죠."
사업을 향한 집념이 남다른 안 대표는 ‘사랑의 열망을 충족하라’(satisfy desire of love)는 지향점을 오른팔에 문신으로 새겼다. 결혼도 사업 때문에 미뤘다. "결혼하면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아 사업에 공감하기 힘들 수 있어요. 사업하는 동안 결혼할 생각이 없어요."
그는 직원들을 뽑을 때에도 가치관이 같은지 물어본다. "사랑에 편견이 없는지, 얼마나 생각이 열려있는지 물어봐요. 이렇게 뽑은 직원 45명에게 만남을 위한 대리자가 되라는 뜻에서 자칭 '큐피드' 증서를 나눠줬어요."
그만큼 그는 만남 앱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고 해외 진출을 준비 중이다. "내년에 해외 진출을 준비 중입니다. 여기에 맞춰 만남 앱을 패션 명품처럼 인기 있고 믿을 만한 서비스로 키우는 것이 목표입니다."